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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행
관리자 조회수:97
2019-12-13 10:29:30
보살행

우리는 불교를 단순히 종교적인 관점으로만 익숙해 있다.
그리고 근대 조선시대의 불교를 정치적으로 탄압하여 인류문화의 가치의 우수성을 왜곡하여
우리들의 삶과 격리된 산속으로 구속시켰던 것이다.
본디 부처님은 중생시절에도 그래했고 부처시절에도 보통사람들과 함께 삶을 사셨던 것이다.
불교는 삶, 현실적 생활 그자체 입니다.
보살의 삶도 그와 마찬가지로 동체중생과 동체대비하는 삶을 영위하여야 할 것이다.
'과부의 심정은 과부만 안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남의 고통을 이해하고 위로하기 위해서는 그 고통을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말이겠지요. 그래서 '자기 배가 부르면 종도 배부른 줄 안다'는 속담이 생겨났겠지요. 부처님의 가르침이 젊은이들에게는 현학적으로 이해될 수 밖에 없는 점도 이런 경우일지도 모릅니다. 세간의 많은 삶의 고통속에서 인생을 겪어보지 않고서는 부처님의 구제의 가르침을 가슴 깊이 받아 들이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제희는 뜻하지 않던 왕사성의 비극을 겪고서야 부처님의 가르침이 더욱 가슴 깊이 새겨졌을 것입니다. 스스로를 악인이라 자각하고 두려움에 쌓여 부처님께 구원을 요청합니다. 자신의 잘못 을 깊이 깨달은 위제희는 냉정을 되찾고 부처님께 애원합니다.

"세존이시여, 원하옵건대 부디 저를 위하여 괴로움이 없는 곳을 널리 가르쳐 주십시오. 저는 그 와 같은 세상에 나기를 원합니다. 이 세상에는 아무런 미련도 없습니다. 더럽고 악한 이 세상은 서로 싸우고 괴로워하고 미워하면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지옥 아귀 축생의 세계밖에는 안되 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두 번 다시는 이런 나쁜 사람들의 소리가 듣기 싫으며 나쁜 사람을 만나 기도 싫습니다. 저는 이제 몸도 마음도 세존 앞에 던져 저의 죄를 깊이 참회할 뿐이옵니다. 세상 의 빛이신 부처님이시여! 부디 저에게 청정한 업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보여 주십시오." 이때 세존 께서는 미간에 광명을 나타내시어 시방제국토(十方諸國土)를 두루 비추시었습니다." (불설관무량수경)

위제희는 이 세상의 고통이 너무나 싫어서 눈물로 참회하면서 진지하게 정토를 구합니다. 이제 위제희의 기원은 단순한 향락의 세계로의 도피는 결코 아닌 것입니다. 지옥 아귀축생이 가득 찼 다는 것은 인간의 탐욕과 진애와 우치에 의해서 일어나는 무서운 분쟁의 현실을 말한 것이며, '나 쁜 사람'이니 '나쁜 사람의 소리'니 하는 것도 자기의 죄악에 대한 깊은 아픔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것은 이런 죄악의 현실세계에 대한 집착심에 대 한 반성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자비를 바라고 참회하여 청정세계에 구제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위제희의 원에 응하시어 미간에 광명을 발하시고 십만무량제불의 정토를 두 루 비추시어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아미타불이 계시는 극락정토를 비추시 자 위제희가 그 세계에 나기를 소원하므로 부처님은 그녀에게 이 고통에 찬 세계로부터 극락정토 로 가는 구원을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이때 위제희는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 샘솟아 오르면서, 다시 큰 슬픔이 저 가슴 깊은 곳으로 부터 복받쳐 왔습니다. 나는 이 악의 세계를 떠난다고 하지만, 이 악의 세계에서 고통받는 남편 빔비사라왕, 아들 아사세는, 저 제바달다는, 그리고 일체의 중생들은 어떻게 구제하는가 하는 것 이었습니다. 이때에 위제희는 부처님께 아뢰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불력에 힘입어서 저 국토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난 뒤의 후세 사람들은 광명을 잃은 채 악에 더럽혀지고 착하지 못하여 모든 고통에 시 달리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아미타불의 정토를 볼 수 있겠습니 까?" (불설관무량수경)

위제희의 이 갸륵한 마음에 응하시어 부처님은 다시 일체중생의 구원의 길을 설하시기 시작하 였습니다. 우리는 위제희의 이 이웃에 대한 커다란 자비심 때문에 함께 구원의 배를 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만일 대부분의 경우와 같이 이기심을 버리지 못하는 신앙심이라면 자신만 구제되면 되었지, 이 웃을 돌아볼 생각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목련존자의 어머님처럼 자신을 따라 구원받으려는 지옥 의 이웃 중생을 차던지는 마음을 일으키기가 쉬울 것입니다. 며칠 전 어느 곳에서 버스가 강에 추락해서 전원이 죽고 한 사람만 살은 일이 있었지요. 그때 그 생존자의 이야기가 자신이 창문으 로 나오는데 누군가가 발을 잡고 따라 오길래 차버리고 겨우 나왔다고 했습니다. 인간 세상에서 는 어떻게 보면 당연할 것같지만, 다시 돌이켜 보면 이런 사람에게는 이기심이 남아있기 때문에 이웃에게 큰 슬픔을 일으킬 수는 없습니다. 복잡한 그러면서도 정교한 인연의 도리를 볼 때 그 과보를 반드시 받을 것입니다.

위제희처럼 자신의 고통에서 믿음이 출발했지만 이기심을 버리고 참회하게 될 때 바로 이웃에 대한 사랑이 용솟음칩니다. 이 이웃에 대한 사랑은 그들을 거절하는데서, 염려하는 연민에서 시작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보살의 서원(誓願)인 것입니다. 이렇게 서원을 발하게 되자 한갖 구 원의 대상이었던 작은 존재에서 뭇 중생을 구원하는 보살로 전환이 되는 것입니다. 보살의 서원 은 무슨 큰 권력이나 재력이나 능력을 가져야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이웃에 대한 걱정을 함께 하는데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법장비구의 48대원도 중생에 대한 연민에서 출발하였고, 약사 여래의 12대원도 병든 이웃에 대한 연민에서 출발된 것입니다. 이 마음이 커져서 아미타불이 되 고, 약사유리광 여래가 된 것입니다. 오늘 이 법회에 참석한 우리 보살님들이야말로 연민의 정을 이웃에까지 돌릴 수 있다면 진정한 보살이 되기에 가장 합당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관세음 보살의 구원력도 바로 이런 대비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눈먼 딸을 데리고 분황사의 관음상 앞에선 희명은 기도를 했습니다. 관세음보살 당신은 눈이 천개나 되는데 그것 하나 내 딸에게 주는 것이 당신에게는 쉬운 일이 고, 내게는 얼마나 큰 일인고. 그러니 자비를 베푸소서 하는 내용입니다. 자비는 바로 이렇게 고 통받는 사람에게 가까이 있어야 하고 직접 베풀어져야 합니다. 그러기에 보살은 천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신음의 소리를 듣고 달려가 어루만져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일을 누가 하겠습니까? 우리들이 이웃에 따뜻한 눈길을 보낼 때,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 리 모두는 각각 보살의 분신이며 화신이 되는 것입니다.

서원(誓願)은 스스로를 지킴과 이웃을 향해 열려진 마음입니다. 탐심과 진심과 치심을 경계하 고, 항상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지키며, 참회하고 수행하는 구도의 자세가 곧 지킴이며, 자신을 낮추고 이웃에 대한 연민의 정을 가질 때 아상을 버리고 이웃과 하나가 될 수 있는 열려진 마음 을 가지는 것이 곧 원을 발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곧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의 보살정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자리를 버린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부귀와 영화를 헌신짝같이 버리고 출가한 승 려도 명예와 권위를 버리지 못하여 도를 그르치는데, 하물며 세석에 사는 신자들이야 얼마나 어 렵겠느냐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서민 대중은 이미 버릴 아집도 아상도 없는지 모릅니다. 우리같은 전문 성직자가 더 아상과 아집에 쌓여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버려야 할 아집은 버리지 못하고, 가져야 할 연민과 사랑의 마음만을 버려 버리고 길거 리의 돌맹이 처럼 냉냉한 덩어리로 마음의 철문을 굳게 잠그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자기 참 회없이 수행을 한다면 그것은 산에 가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이 수고만 많을 뿐 소득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신도님들이 오히려 더 좋은 수행처를 갖고 있고 더 높은 수행을 쌓고 있 을지도 모릅니다.

신라 전역에 아니 당나라까지도 이름이 널리 알려졌던 원효스님이 어느날 길거리에서 대안대사 를 만났습니다. 대안대사 왈 "당신은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해야 한다고 수많은 저술에서 주장하 고 있는데, 당신은 그런 중생을 보기라도 했으며 만나기라도 했느냐? 보지 않고 만나지도 않았으 면서 도대체 무엇으로 어떻게 구원한다는 말이냐?" 이렇게 힐난 하면서 "오늘 내가 그 중생을 보 여 줄테니 같이 가자"고 하면서 소매자락을 끌고 저자의 술집으로 데려가자, 원효는 기절초풍을 하고 도망을 쳤습니다. 그 이후 원효는 자신의 신앙을 깊이 반성하고, 참다운 대승(大乘)의 도리 에 눈뜨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고통받는 대중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저자의 거리로 나섰으나, 대중은 그를 공경할 뿐 친구나 이웃이 되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또 그가 가진 지식과 수행 으로는 그들에게 아무런 보탬도 될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원효스님은 새로운 출가를 결심하게 된 것이지요. 그 유명한 원효라는 이름 때문에 그는 대중과 함께 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원 효스님은 그 '유명한 원효'를 버리기로 결심하고 그 방법으로 승려의 생명인 파계를 택하게 된 것 입니다. 권위와 위선으로 가득찬 아상을 던져 버릴 때 그때야 비로소 원효는 보살로서 승화를 한 것이지요. 그러자, 이제까지 그를 추앙하던 국왕 대신과 스님들은 그를 비난 했지만, 대중들은 그 를 따뜻이 맞이했습니다. 그래서 뽕따는 아낙네, 뱀잡는 땅꾼 등 수많은 대중과 이웃이 될 수가 있었으며, 그는 그속에서 대승의 깊은 사상을 다시금 인식하게 되었고, 부처님께 엎드려 귀의하는 겸허한 신앙을 갖게된 것입니다. 이것이 원효의 정토사상인 것입니다.

원효보살의 대중교화의 한 실례를 들어보면, 어느날 땅꾼 사복이 그를 찾아와서 자기의 어머니 가 죽었는데 같이 장사를 좀 지내자고 해서 시신을 가마니에 싸고 앞뒤로 둘러메고 장례를 치루 는데 사복이 하는 말이 "염불을 좀 해라"는 것이였습니다. 그러자 원효보살이 "죽지 말지어다. 나 는 것은 괴로운 것이요, 나지 말지어다. 죽는 것은 괴로운 것이다"라고 했더니 사복이 너무 길다 고 간단히 하라고 하기에 "나는 것도 죽는 것도 괴롭다"고 하니까, 됐다고 만족해 했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행동의 성자 원효보살은 땅꾼 사복의 친구로 사복의 충고를 받는 그런 우리의 이웃이 였던 것입니다.

불교를 먼 곳으로부터 찾지 말았으면 합니다. 고통의 일상성 속에 부처님의 심오한 가르침은 항상 가득차 있습니다. 고통과 번민이 없는 곳에 어찌 구원의 가르침이 있겠으며 고통받는 중새 의 없는 곳에 어찌 보살의 정토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매일 만나는 내 이웃이 모두 부처님이며, 매일 하는 일일이 다 불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